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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칼럼기사에서 2013년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당시부터 그들을 응원하고 있는 3명의 ARMY에게 계속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먼저 칼럼기사 먼저 올리고 댓글반응은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칼럼 기사 본문  〉
어째서 "방탄소년단"에 열광하는가..? BTS팬 경력 8년, 최고참 ARMY에게 " 계속 응원하는 이유"를 물어 봤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Artist of the Year를 획득하는 등, 더욱 더 주목을 끄는 한국의 보이 그룹 BTS .
 
최근 ARMY(BTS의 팬들의 명칭)가 된 것을 공언하는 연예인도 늘었지만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부터 팬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을 알게 됐을까.
 
2013년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당시부터 실시간으로 계속 뒤쫒고 있는 3명의 ARMY에게 물어보았다.
 
 
우선 블로그 "히마히마(틈틈이) 광장"을 운영하는 틈틈이 씨.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회인이다. 서양음악, 고전음악 불문하고 음악을 좋아하며, 2005년에 드라마 OST(사운드 트랙)를 구매한 이후 K-POP에 빠져들었다.
 
매일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BTS에 대해서 쓴 기사는 무려 4000개(!)이상이다. ARMY가 된 계기는?
 
 
■ BTS는 "아이와 동세대"
"CS방송에서 한국 음악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데뷔한지 얼마 안 된 반탕 (방탄 소년단)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데뷔 곡 『 NO MORE DREAM』(2013년 6월)의 JIMIN이 멤버의 등을 건너가는 부분을 보고 말뚝 박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아크로바틱한 춤이었기 때문에 좌우간 모든 노래와 춤을 보려고 했고, 힙합 색을 앞세운 1st 미니 앨범 『 O!RUL8,2?』(2013년 9월)의 꽤 자극적인 가사 『 BTS Cypher PT.1』와 한국의 사투리로 노래한 『 팔도 강산 』 등에 매력을 느껴 매일 들었습니다.
 
 
그들은 내 아이와 비슷한 세대라서, 가사를 읽으면 낯간지러운 것 같기도 했는데, 보통의 학생이 고민할 법한 것을 자신의 말로 솔직하게 쓰는 점에 호감을 가졌어요. 다음은 어떤 곡을 발표할지 두근거리고, 쫓아가게 되었죠"
 
퍼포먼스와 음악에 끌린 것이다. 틈틈이 씨가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것은 JIMIN이다.
 
 
■ 성공까지의 여정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그 춤에 압도되는 것은 물론이고 데뷔 당시는 지금보다도 통통하고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온 아들처럼 보였습니다.
 
2015년에 부산 팬미팅에서 본 『DOPE』의 퍼포먼스도 잊혀지지 않아요. 『피, 땀, 눈물 』(2016년 10월)에서 갑자기 요염해지면서 부터는 섹시한 춤에도 매료되고 있습니다. (웃음)"
 
 
BTS의 소속사는 데뷔 당시부터 일본에서의 프로모션에 주력하고 있었다. 매달 방문하고 있었으므로, 틈틈이 씨는 "우리 애를 만나는 것보다 그들을 만나는 횟수가 더 많다"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들이 성공하기까지의 여정을 어떤 식으로 지켜보고 있었을까.
 
"힘든 일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작은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어서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시간도 짧아, 자신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가 어려웠어요. 『 방탄 소년단 』이라는 그룹 이름도 솔직히 본인들은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그것은 팬들 역시 똑같아서, 저는 여러 사람에게 방탄을 권하려고 했었지만 
 
『 방탄 소년단 』이라는 이름을 내놓기만 해도 피식 웃어버리고 말아요.
 
좀처럼 본론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도중에 콘셉트를 조금 변형해서 해외에서의 이름을 『BTS』로 한 것은 좋은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 방탄소년단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결코 팬이 된 것을 후회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 것도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 "원폭 T셔츠 소동"을 넘어
2018년 발생한 "원폭 T셔츠 소동"도 이겨내고 틈틈이 씨가 계속 응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흔히 듣는 얘기이지만, 공식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가지 컨텐츠를 통해서 그들은 원래모습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무대에서만 보던 것과는 달라서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8년간이나 쫓아다닐 수 있었겠죠.
 
 
2013년경에는 아직 트위터를 이용하는 아이돌이 적었고, 사무소의 계정은 있어서도 매일같이 뭔가를 올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BTS는 개인 계정을 만들지 않고 그룹 계정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7명 전원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질문을 한 사람은 한국어 원어민으로 일본어에 능통한 IAN 씨이다. BTS를 우연히 만난 것은 무려 초등학생 시절이다. 특별히 밀고 있는 멤버는 없는, 팀 전원의 팬이다.
 
 
■ 아버지의 먼 지인의 아들
"저는 부산에 살고 있고, 아버지가 지인의 또 지인의 아들이 JUNG KOOK이었어요. 데뷔할 거니까 응원해 줘 라는 말을 듣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 NO MORE DREAM』을 보면서 푹 빠졌습니다. 아이돌인데 눈에 독기가 있고,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생활의 중심은 학교 공부이고, 연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 적도 없어서, 당시 히트했던 EXO나 INFINITE의 러브송은 도무지 와 닿지 않았어요. 방탄의 가사가 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빅 히트를 설립한 방시혁 씨는 3대 소속사인 JYP에서 히트곡을 몇 개나 작업한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회사에서 어떤 그룹을 만들지 기대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제 기억에 『 NO MORE DREAM』은 평판이 좋았어요. 3rd 미니 앨범 『 화양 연화 pt.1』(2015년 4월)의 SKIT(※)에서 J-HOPE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그런 결과였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다음의 『N.O』은 멤버들도 기대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고, 그 후속곡 『 진격의 방탄 』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후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 다음은 떨어지게 되는 그런 식의 흥망성쇠가 심해서 성적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안티팬에게 『 흙수저 아이돌 』 이라고 야유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곡과 곡 사이에 삽입되는 회화 등.
 
"흙수저"이란 것은 한국에서의 하층 계급을 나타내는 속어이다. BTS에는 유복한 가정 출신 멤버들도 있으나, 일부로 사용함으로써 깎아 내린 것이다. IAN 씨가 한국에서의 히트를 실감한 것은 "Boy In Luv"(2014년 2월)가 출시되었을 때이다.
 
 
"그 전까지 학교 친구에게 방탄이라고 말해도 그게 누구야? 라는 식이었는데, 얘기가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Danger』(2014년 8월)로 다시 떨어졌지만, 연말 MAMA(Mnet ASIAN MUSIC AWARDS)의 퍼포먼스가 화제가 되어, 2015년 『I NEED U』로 처음 1위를 거머쥐었습니다. 후속 곡 『DOPE』도 히트해서, 해외 팬도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콘서트에도 몇 번이나 가고, 민감한 10대 시절을 BTS와 함께 보낸 IAN 씨. 다른 그룹에 눈을 돌렸던 일은 없었을까?
 
 
"없었어요. 친구는 『 왜 방탄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니 』라고 물어봅니다만, 저 스스로는 특별히 빠져있다는 걸 못 느끼지만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기 때문일까요? 방탄의 음악을 듣는 것이나 동영상을 보는 것은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느낌입니다."
 
 
■ 일본 팬이 보낸 인이어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신 것은 JINSUPPORT JP, 통칭 진 서포트 씨.
 
10월 24일 온라인 콘서트에서 JIN이 끼고 있던 핑크색 인이어는 2017년 JIN의 생일을 기념하여 일본 팬이 보낸 것이다. 그 인이어의 제작비용 총괄부터 사무소와의 절충까지 담당한 것이 진 서포트 씨이다.
 
BTS를 알게 된 계기는?
 
"다른 K-POP 그룹을 쫓던 시기에 친구가 『이 아이들 곡 한번 들어봐!』 라며 알려 주었습니다. 2013년 7월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들어봤는데 멋있었어요. 당시 인기가 있었던 BIGBANG 등과 달리 대중의 인기는 없는 거 같았지만, 임팩트가 대단했습니다.
 
 
거기서부터 방탄에 흥미를 가지고, 가끔 공식 트위터를 봤는데 SUGA가 찍은 멤버의 사진이 있었거든요. 『뒷모습뿐이지만 이 아이 엄청 멋있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JIN이었어요(웃음). 이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라는 시점부터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멋진 만남이다. 진 서포트 씨에 의하면, 데뷔 당시에는 한국보다 일본 팬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관람하러 가서, 현지인에게 방탄소년단의 팬이라고 해도 『누구?』냐고 물어보셨어요. 하지만 일본 행사는 2013년 12월에 열린 첫 쇼케이스부터 만석이었고, 100명분의 명의를 빌려서 응모했지만 추첨되지 못한 지인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첫인상은 필사적으로 열심히 했고,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K-POP에는 신인 아이돌에게 팬들이 식사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서포트하는 문화가 있다. 일본 ARMY 사이에서도 현장과 SNS에서 교류를 하던 중 서포트 계정이 생겼다.
 
 
"예를 들어 어느 이벤트에서 풍선 아트 축하 선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각 멤버의 서포트 계정이 (풍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마침 JIN 서포트 계정이 없어져 버린 시기가 있었고, JIN만 풍선이 없는 건 허전해서, 내 돈으로 부담해서 보냈습니다(웃음). 그랬더니 다른 JIN팬들이 사진을 찍거나 매우 기뻐해 주셨었죠.
 
 
그 일이 격려가 되었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서포트 계정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음악적인 평가가 낮지는 않았지만 BTS는 좀처럼 한국에서 1위를 획득할 수 없었다.
 
 
■ 1위 획득을 위해서 일한의 팬들이 협력
"『Danger』이 기대했지만 조금 아쉽게 1위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I NEED U』는 본격적으로 1위를 따낼 생각으로 만든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ARMY도 어떻게 해서라도 1위를 따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원수가 많았던 일본의 ARMY에게 『협력해 주세요』라는 부탁이 왔었어요. 그래서 스트리밍과 투표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1위를 획득한 후에 사인회에서 RM이 일본의 ARMY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해 준 것이 기뻤어요. "
 
 
일본과 한국에서 성공하고 미국에 진출하면서 팬덤도 커져 갔다. JIN의 핑크색 인이어는 사무소에 허가 받은 마지막 생일 선물이었다.
 
 
"선물이 금지되고부터는 JIN의 생일에 맞춰서 참석자를 모집하고 한국의 지하철 내에 축하 광고를 하는 서포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JIN이 생일에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했던 적도 있고, 기르던 애완견을 생각하며 만든 곡 『 이밤 』의 발표일에 맞추어, 동물에 대해 같은 마음을 품은 분들과 함께 일한의 동물 보호 단체나 시설에 기부를 했습니다. 참가자 분들의 돈을 담당해 입출은 물론, 도중에 경과도 부지런히 보고하고 있었지요.
 
 
요즘은 개인이 여러 가지 기획을 세우는 분이 계시지만, 사기와 다름없는 것도 있다고 들어서, 참가할 때에는 의문점을 제대로 질문하고 성실한 대답이 돌아오는지 아닌지 판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 기쁜 반면, 쓸쓸한 마음도
BTS를 응원해 온 8년간, 서포트 계정을 운영하던 5년 반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진 서포트 씨.
 
"국가 간 관계의 복잡성을 실감하거나, 불평을 쏟아내고 싶어지는 일도 있었지만 즐거운 일이 더 많더군요. 순식간에 8년이 지나버린 느낌입니다.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서 응원했는데, 방탄이 이렇게 유명해져 버리니 기쁜 반면, 쓸쓸한 마음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눈을 맞추고 말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성장하고 멀리 가 버린 것 같아서…….코로나 재난으로 인해 무대에 선 그들을 볼 수 없었던 것도 클지 모릅니다.
 
최애인 JIN은, 데뷔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점이 좋아요. 언제까지 ARMY로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오랫동안 팬이 되었던 것은 방탄이 처음이고, 저에게 있어서는 변함없이 특별한 그룹입니다"
 
변화가 빠른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 하나의 그룹을 길게 응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BTS를 꾸준히 응원해 온 고참 ARMY에는 경의감을 느낀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BTS의 본질은, 수없이 많이 빛나는 기록이 아니라 ARMY 앞에서 퍼포먼스할 수 있는 무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도 빨리 콘서트에서 BTS와 ARMY가 재회할 날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번역기자:soya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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